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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소개합니다

나의 사십춘기에게. 나의 첫번째 캠핑카. 나의 침실. 나의 거실. 나의 식당. 나의 호텔. 나의 카페. 레이. 안녕.

by 최신버전 2022.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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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춘기를 힘겹게 보냈다. 지금 돌아보면, 감사하게도, 미니 은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5천만원의 1년급을 포기하고 1천만원의 생활비를 더 써야 했지만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보다 더한 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때니까.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다 동해-남해-서해. 해안선을 따라 다녔던 여행 30일.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고, 다시 떠나 제주도의 해안을 따라 다녔던 여행 30일 다시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고, 다시 11살 딸이 고른 여행지 블라디보스톡의 바닷가를 따라 다녔던 여행 12일. 그렇게 다시 돌아와 집안일과 피트니스에 맞추어 살았다.

그 후로도 2년 여. 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왜 이런 사람들 속에 있을까? 직장, 친구, 가족. 대체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아니, 오늘 밤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거, 너무 잘 알게 되었는데, 그게 온몸으로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오늘 당장 내게 소중한 일을 해야 한다는 거, 내게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내게 소중한 꿈을 이뤄야 한다는 거, 알겠는데,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정말 힘든 것은, 이 다음부터.

 

도대체, 뭐가 나에게, 중요한 걸까? 나의 시간을 대체, 왜 여기에 쏟아야 하는가? 선택을, 할 수가 없다는 거..


헤깔린다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나..

 

몰랐다. 선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 힘든지.

 

 

 



그래 그럴 것이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분별이 명확한 사람에게, 선택이 쉬운 사람에게, 이 세계는 너무 쉽다. 그가 지혜롭다면 지혜로운 대로, 그가 어리석다면 어리석은 대로, 분별이 명확한 사람에게, 선택이 쉬운 사람에게, 이 인생은 너무 쉬울 테다. 그러나 분별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래, 그러고보면 정말 그랬다. 모든 고통의 끝은 결국, 혼돈이었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결국, 사람들은 정신을, 분별을, 선택을, 놓아버렸다. 나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던.. 그, 뿌옇고 탁했던 시간들.


그 혼탁했던 시간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동안 바닷가에서 보냈다. 높은 산에서 보냈다. 넓고, 높고, 트인 곳에서 보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을 생각하며 보냈다. 침전의 시간이었다. 동주가 말하던 그 시간. 침전의 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떠다니던 검고 더러운 것들이 가라앉고, 내 마음에 이리저리 부딪히던, 그 무겁고 단단한 덩어리들이 가라앉고, 조금씩 조금씩 탁하던 시야가 걷혔다.

 

 

 

 



길고 깊었던 사십춘기. 그 어둡고 깊은 항해에, 그 깜깜했던 항해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오랫 동안, 그 어둠을 들여다봤다. 의심이 사그라들 때까지 보고, 다시 봤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 빛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 빛은 웃음이었다. 문득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나를 웃게 했던 것들. 문득 떠올리면, 어느 새 나를 웃게했던 일. 사람. 놀이. 나는 그 별을 따라 항해했다. 그들이 나의 별자리가 되었다.

부디 바라기로는, 내가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이 고통스런 시간이 있기를 빈다. 그 고통스런 시간에, 미니 은퇴를 실행할 수 있는 환경도, 기회도, 용기도 있기를 빈다. 그 시간을 겪고 난 다음에야, 나는 조금은 더, 내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디, 내가 아끼는 이들이 모두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고통스런 시간을 건너뛰면 좋겠지만.. 글쎄..

 

살아보니, 그건 더 큰 고통을 겪을 일 같아서.. 권하고 싶지 않다. 물론, 권하거나 권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빛난다는 것이다. 그 빛의 근원은 '충만함'인 것 같다. 오늘, 당장 죽는다고 해도, 내가 가진 환경과 조건에서, 이 이상의 삶은 살 수 없을 듯이, 마치 니체가 말한 그 삶- 다시 살아도 오늘 이렇게 사는 것이 내게 가장 최선일 것 같은 삶을.. 그렇게 오늘 하루 내 삶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뿜어내는 빛, 그 에너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잠시 밀어낼 수 있을 듯한.

언젠가 다시 그 혼돈의 시간이 오겠지. 하지만 예전만큼 괴롭지는 않을 것 같다. 꽤 많은 것을 포기했고, 꽤 많은 것을 분명히 했다. 그 때만큼 혼탁하지는 않을 거 같다.

 

 

 



그 시간들 이후, 몇 가지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나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더욱 비웃고 조롱할 만한 것들, 안될거라고, 너같은 게 그게 되겠냐고, 널 위한 거라고, 겉으로 직접 말은 안하지만 정확하게 정리하면 건방 떨지 말고 그만 두라고 할 만한 일들. 조금 더 깊이 들어보면 그 말은, 


두렵다고, 나도 내 삶의 의미를 잘 못찾겠는데, 이게 정말 다인가 불안한데, 나와 별다를 게 없는 네가 자신의 의미를 명확히 찾아가는 게, 자신의 세계를 또렷이 확장해 가는 게, 자신은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한 일을 하나하나 실현해 가는 게, 결국 지금의 내 삶은 내가 포기한 것들의 총합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게 두렵다는 말들. 나의 오늘에 대한 책임은 결국, 모두 온전히 나라는 것, 그것을 내가 직면해야 하는 두려움. 그래서 더,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들이 있다.

1년 걸리는 것도 있고, 5년 걸리는 것도 있고, 10년 걸리는 것도 있으며, 20년이 걸릴 만한 것도 있다. 내 앞으로의 삶은, 이것들을 시도하는 것일 듯하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함께 해 준 친구를 오늘, 보냈다. 레이.
2012년 6월식. 2.6만 키로. 2017년에 1천만원으로 만난 친구. 이 시간을 거의 내내, 이 친구와 함께 보냈다. 나의 모빌리티이자 침실이었고, 식당이었으며, 서재였고, 전망 좋은 거실이었고, 어둠 속에 홀로 열린 카페였다. 2022년 13만 키로. 4.4백에 보냈다. 헤이딜러를 이용했다. 딜러분이 감가평가를 하는 동안, 내내 레이를 쓰다듬었다. 정말 고마웠다. 그 시간, 내 곁에 있어 줘서. 네가 있어 가능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좋은 주인 만나기를. 마지막까지 사고 없이 지내다가 평안히 가기를.

안녕 레이.
안녕 나의 사십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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