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교통사고로
다리와 대퇴부의 복합골절과 척추 8군데 골절, 갈비뼈 4개 골절
머리가 찢어져 30여바늘을 꽤매는 중증 외상을 치료받고 5주만에 퇴원해
그가 쓴 책
유혹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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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이 한 때 교사였고, 교사였던 시절에
가장 글을 쓸 수 없었다는 고백을 보면서, 위안을 받았다면 너무 바보같은 걸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너무 지쳐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는 그의 말에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그와 같은 위대한 작품을 쓰려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붙잡은 그런 놀라운 작품을 쓰려면
교사를 그만두어야 하나...싶은데,
일단은, 그의 글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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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정신 감응.
이야기는 어느 날 허공에서 벼락처럼 꽂히는 것.
좋은 소설가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떠오른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
글쓰기의 연장통 가장 위에 놓을 것은 어휘력.
굳이 어려운 낱말을 쓰는 것은 쓸데 없는 짓이며
일부러 천박한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쉽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법도 연장통의 맨 위쪽에 놓아야 한다.
헤밍웨이도 단문을 즐겨썼다.
소심한 작가들이 수동태를 좋아한다. 수동태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수동태도 정확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부사도 소심한 작가들을 위한 도구이다.
부사는 작가의 친구가 아니다.
정확하게, 단호하게 써야 한다.
'그는 문을 굳게 닫았다.' 가 아니라
'그는 문을 닫았다.' 라고 써야 한다.
문단은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문단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기본 단위이다.
문단에서부터 의미의 일관성이 시작되고
낱말들이 비로서 단순한 낱말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문단은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문단의 장단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목표는 정확한 문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따뜻이 맞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독자가 소설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다.
소설은 발굴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야기.
작가는 연장들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작가가 되려면 죽어라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작가가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
많이 읽기, 그리고 많이 쓰기.
지름길은 없다. 오직 읽고, 쓸 뿐이다.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놀이이다.
가장 좋은 글쓰기는 도저히 손댈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싱싱할 때 얼른 써버리는 것이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
아는 것에 대해 써야 한다.
일부러 특정 장르나 유형을 택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건 돈벌이를 위해 사기를 치는 것이다.
문학적 우수성에 이끌려 소설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 사람들은 비행기에 가지고 탈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구입하는 것이다.
문체를 모방하는 것은 좋지만,
특정 장르에 대한 특정 작가의 접근 방법을 모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소설은 서술, 묘사, 대화로 이루어진다.
창작은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작가가 할 일은 이야기가 성장해갈 장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서사이다.
그럴 듯한 인물들에게 그럴 듯한 상황만 던져주면 이야기는 완성된다.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묘사이다.
탁월한 묘사력은 후천적 능력으로, 많이 읽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이다.
묘사는 작가가 독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싶은 지를 떠올려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작가가 마음 속에 떠오른 모습을 말로 표현하는 것으로 끝난다.
묘사가 빈약하면 독자는 어리둥절해지고, 근시안이 되고
묘사가 지나치면 이야기는 온갖 자질구레함에 파묻힌다.
묘사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시작하여 독자의 상상력에서 끝나야 한다.
묘사를 잘하는 방법은 명료한 관찰력과 명료한 글쓰기이다.
명료한 글쓰기는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좋은 소설을 쓰는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대화문은 읽기만 해도 즐겁고, 형편 없는 대화문은 조금만 읽어도 지긋지긋하다
좋은 대화문을 쓰는 작가들은 대화를 잘 듣는 귀를 타고 난 것처럼 보인다.
등장인물을 실존 인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소설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느냐 하는 문제는
소설을 쓰면서 등장인물에 대하여 작가가 어떤 사실을 발견하느냐에 달려 있다.
작가가 일을 제대로 했다면, 등장인물이 생명을 얻어 스스로 온갖 일들을 해 나갈 것이다.
초고를 읽을 때 발견하는 가장 명백한 오류는 주로 등장인물의 동기에 관한 오류이다.
글을 쓸 때 가상독자를 만들고 늘 곁에 두고 함께 하라.
그것이 독자를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독자는 이미 일어난 일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훨씬 관심이 많다.
시작할 용기가 있다면 마침내 해 낼 것이다.
작품은 독자의 삶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그것이 작가의 삶도 풍요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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