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한 형이
"우리 아이들이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난 몇년 안남았다고 생각해...길어야 3년?5년? 그 이후엔 내품을 떠나겠지? 얼마 안남은 시한부 관계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자!"
5살, 4살 아들,딸을 키우며 육아에 지쳐 힘들어 하던 내게 이 말이 준 가슴속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 했다.
'시한부 관계' 뭔가 무서우면서도 슬픈 단어 아닌가?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빨리 아이들이 커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부모로부터의 의존도가 낮아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처음 우리품에 찾아 왔을 땐 그런 생각을 안했을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첫째 아이가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만해도 정말 세상을 다가진듯 기쁘면서 빨리 나와서 내품에 안기기를 10개월 동안 매일매일 기다렸다.
형체가 갖춰지지 않은 점만 찍힌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씽씽아~"부르면서 행복해 했던 나날들이었다.
아기띠에 인형을 넣어서 매는 연습도 하고, 유아 박람회가서 유모차도 사서 빈유모차를 밀며 행복해하고, 배넷저고리, 내복, 양말을 사서 거실장에 전시해 놓고 바라보며 흐뭇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현실 육아가 시작되면서 뭔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이놈은 자기가 자고 싶을 때 자고 깨면 울고, 배고프면 울고, 불편하면 울고, 졸리면 울고, 대소변 보면 울고...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두명의 간절한 눈빛이 나를 기다린다.
육아에 지쳐 빨리 바턴터치를 간절히 바라는 아내의 눈빛
힘있는 아빠가 빨리 나를 즐겁게 해주고 안아 달라는 자녀의 눈빛
처음 몇개월은 그래 내가 다해줄께~ 넌 내 아내고, 넌 내 아들이니까....이세상의 전부니까~
지치는데까지 길게보면 2개월 갔던가 같다.
체력이 고갈되는 2개월 후부터 자는 아내와 자는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이뻐지게 된다.
너무 피곤해서 자는데 아이는 새벽에 배가고파서 꼭 1~2번씩 깨서 칭얼거린다.
모유수유를 원하는 아내 덕분에 새벽에 편할 줄 알았으나 현실은 우는 아이를 달래며 아내를 조심스럽게 깨우게 된다.
"제발 애 젖좀 물리게 해줘..." 아내가 젖을 먹이는 동안 고맙다면서 발 마사지를 하고 새벽에 젖동냥을 하게 될 줄이야...ㅋㅋㅋ(아내는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느라 엄청 피곤하기에 이해는 한다)
식사를 할 때도 아내가 밥먹는 동안은 내가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밥을 다 먹으면 아내는 아이밥을 먹이고 난 허겁지겁 먹고 아내와 교대를 한다.
맛있는 반찬이 필요없고 그냥 비벼먹는게 제일 편하고 맛있게 된다.
외출을 하게 되면 더 힘들어진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질줄 모르니 아이 외투, 햇볕이 강하니 아이 모자, 음식을 흘리거나 이물질이 묻으니 여벌 옷, 여벌 기저귀, 양말, 가제수건, 유모차, 식당에서 앉혀놀 수 있는 범퍼의자 등등.... 아몰라!!!! 다시 생각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갑자기 1년 6개월 뒤 정말 소중한 둘째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쌍둥이보다 힘들다는 연연생!!!
힘든게 두배가 아니고...제곱이었다.
한명만 있을 땐 번갈아가면서 아이를 케어하면서 잠시라도 쉬었지만 둘이 되니 1:1 개인마크를 해야했다.
밤이나 새벽에도 겨우 한명 재우면 한명이 깨어나면서 같이 일어나서 칭얼거리고... 이땐 혼자 둘을 케어할 수 없어 아내와 둘다 일어나서 케어를 해야했다.
진짜 한 놈 겨우 재웠는데 나머지 한놈이 안잘 땐 진짜....'세상 가장 큰 선물이니', '신이주신 선물이니' 다필요없고 진짜...아오~~~
둘째가 나오고 부터는
외식을 잘 안하게 되었다.
여행도 잘 안가게 되었다.
그렇게 5~6년을 지지고 볶고 키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놈 시키들 빨리 커서 혼자 알아서 척척하는 나이가 빨리 됐으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이제 좀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운동도 하고, 영화도 맘편히 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술도 편하게 마시고, 여행도 편하게 좀 다니고...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아이들이 빨리 나로부터 멀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주변 육아 선배들에게 "언제쯤 편해져요?"라고 물으면
"조금만 더 고생해 초등학교 고학년되면 지들이 알아서 해서 좀 편해"
"끝날꺼 같지? 안끝나 ㅋㅋㅋ"
이렇게 대답해 주는 사람밖에 없어서 빨리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한테 그만 의지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친한 형이 자식들이 나에게 의지하고 나를 찾는 날이 몇년 안남은 것 같다면서 엄청 아쉬어하며 이야기를 했다.
순간 머리가 띵~ 해지면서 진짜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난 여태까지 우리 아이들이 빨리 자라서 나로부터 독립하기를 기다리고 그 순간만을 바라고 살고있었는데 이 형은 자식이 자신을 찾는 날이 얼마 안남았으니 더 최선을 다해서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초음파 사진에 찍힌 점을 보면서 좋아하고 설레어하던 난데...
같은 시간을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영화 닥터스트레인지에서 에이션트 원이 죽기전에 남긴말이 떠올랐다.
'죽음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끝을 안다는 것은 지금의 소중함을 깨달게 한다는 말이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끝날날을 안다는 것....결국 지금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엄청 소중하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하니 정말 거짓말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아이들의 칭얼거림이 나에게 보내는 몇 번 안남은 신호라는 것으로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주기 시작하니 아이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조르는 것도 함께 노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놀아주다 보니 아이들도 즐거워하고 나도 억지로 놀아주는 것이 아닌 진심을 다해 공감하며 놀다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과의 놀이에 과몰입을 하며 귀찮지 않고, 즐기게 되었다.
"아빠 나도 아빠 할아버지 되면 같이 놀아줄께~" 어느날 딸아이가 나에게 던진 말이다.
갑자기 왜 이런말을 했을까? 내가 은연중에 주입을 했나....ㅋㅋㅋ 아무튼 성공이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아이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맺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유의 날이 조금 더 늦춰지는 것이지만 이제는 평생을 이렇게 지내도 좋을 듯 하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들도 주변사람들의 관심과 즐거운 시간들이 생명을 연장하듯이 아이들과 좋은 관계가 아이들이 내품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려주는 것 같다.
정거장을 떠난 버스와 내품을 떠난 아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이 떠나야 할 때는 언제든 쿨하게 보내줘야 하겠지만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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