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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라이프/주말의 차박영화

주말의 차박영화. 한산. 이순신. 전쟁이라는 질문에 답을 쓰다.

by 최신버전 2022.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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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산 영화입니다. 한산. 용의 출현. 전쟁이라는 거대한 질문을 받은 두 인물의 해답이 싸우는 영화였습니다. 김한민 감독님의 이순신 3부작 중 2번째 작품. 저는 명량보다 좋았습니다.

 

엄청 치밀하고 복잡다단한 요즘 드라마에 익숙한 탓인지 주변 인물들의 서사가 다소 성글어 보여서, 아쉽긴 했습니다만 영화 한 편에서, 더구나 전쟁을 다루는 웅대한 서사에서 그런 작은 디테일까지 잡으려다가 오히려 큰 것을 놓칠 수 있지요. 이해합니다. 그런 것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균형을 잘 잡은 듯합니다.

 

크게는, 전략과 전략의 대결로 영화의 기틀을 잡은 것이 좋았습니다. 빌드업이 좋았습니다. 전략이 이해가 되니, 마지막의 전투가 더 몰입이 되었던 듯해요. 재밌었고, 긴장감 있었고, 후련했습니다. 7백만명의 관객이 보셨네요. 대단합니다. 손익분기점은 6백만이었다고 하네요. 1백만 오버면 대략 1백만 수익이죠. 나쁘지 않은 결과입니다. 최소한 다음 편을 제작할 수준의 성적표입니다.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2-07-27 개봉영화 장편 한국 2,223 72,036,110,885 7,072,065

 

 

 

 

 

1. 동기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섬세하게 만들어야 할 것은 '동기'이다.

스티븐 킹 작가님의 말씀입니다. 그 어떤 인과도, 인과의 빌드업도, 결국 '동기'로 완성됩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싶지만,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요. 또 그 상황에서 얼마든지 다른 행동이 가능하고, 그 행동에는 또 다른 동기가 필요하고 이 동기의 연쇄가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만드는 것이죠. 동기는 이야기의 시작이지만, 대개 진짜 동기는, 이야기 안에서는 중간 이후에 등장하지요. 이 동기에 관객들을 얼마나 몰아넣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야기의 생명력을 좌우합니다. 놀라운 영상 기술이 기본이 되어가는 시절이어서 더욱, 이 동기에 대한 관객들의 욕구는 오히려 더 높아지는 것 같아요.

 

 

 

 

2. 전쟁이라는 질문

전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질문이지요. 

전쟁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그 자체로, '왜?'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에게는 온 몸으로, '어떻게?'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질문에 정확히 답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죽음이고, 몰살이고, 학살이며, 살육이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장군님도 전쟁 - 임진왜란 이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자신이 곁에 둔 사람과 물종과 물량과 권력과 배치와 욕망과 기세와 기구와 전술과 전략을 모두 고려해야 했습니다. 이 한 번의 싸움이, 이 한 번의 전투가, 조선 반도의 전투를, 그리하여 임진왜란의 전략을 모두 바꿀 결정적인 기점이 될 것임을 짐작했기 때문이었죠.

 

그가 영화 내내,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것의 동기는 이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전투의 무게를 안다면, 느낀다면, 몸으로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행동 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더구나 언제 어디에 세작이 있을 지도 모를 상황. 어떤 호언도, 장담도, 기대도, 의심도, 그러니까 어떤 말 한 마디도, 행동 하나도 그대로 적에게 노출이 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결국 노출이 될 것이라면, 노출이 될 것임을 전제하고 그것 또한 전술에 활용해야 하는 상황. 아군에게까지 거짓을 전하는 명민함으로 적의 혼란을 유도해야 하는 상황.

 

 

 

 

3. 그의 대답은 한산

그는 한산이 되어야 했습니다.

바다를 가로 막는 크고 넓은 산이 되어야 했습니다. 큰 산이 되어, 반드시, 이겨야 했습니다. 적과 아군의 구별이 어려운 새벽, 안개, 거리, 적의 기동을 무력하게 할 조수, 물길, 암초, 적의 심리를 무너뜨리게 만들 유인, 혼란, 기동, 적의 마지막 한 척까지 모두 섬멸할 기술, 전술, 진법

 

4. 한산의 백미 - 학익진 배치

그중에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원균의 위치였습니다. 

내내 이순신 장군님을 의심하며 비난하며 공포인지 용맹인지 알 수 없도록 내내 떠들고 흥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경상 우수사, 원균을 학인진 날개의 한 편에, 그 한 가운데에 배치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 장군님은 자신이 기획한 진법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끌어냅니다.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는 자리에 최적의 사람들을 배치하는 것. 흰 화선지에, 학익진의 대열을 그리며, 그 대열을 채울 군선과 장성들의 이름을 써넣으며 각자가 가진 역량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점검하는 장면이, 제게는 이 영화의 백미였습니다. 

 

그중에 원균은, 심지어 영화 속에서 대장선의 명령을 어기고 원균이 먼저 화포를 발사하는데, 이것으로 화포를 모두 소진한 원균의 배는 마지막의 마지막, 학익진 전체 함포사격에는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이순신 장군님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것이었습니. 전투의 마지막, 승패가 갈릴 일촉즉발의 상황, 장성도 병사도 모두 핏발이 서도록 온몸이 팽팽해질 그 순간에 모두가 마지막까지, 흐트러짐 없이, 장군선의 명령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완벽한 전술이 실행되도록 혼란 없이 명확히 통제되었던 것은 원균이 전투 초반에 화약을 모두 소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원하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요?

 

 

 

 

5. 이순신장군님의 잔혹함, 혹은 완벽함

실제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님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잔혹했습니다.

잔혹하다는 표현보다, 보다 완벽주의자 였다고 말해야 할까요. 전투 후 패잔한 적들의 이동경로와 심리까지 파악하여 선대의 일부를 매복시켜 적의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병력까지 모조리 섬멸했습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전쟁에서는 공포도, 아주 강력한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재래의 전장에서, 눈으로 보고, 냄새로 맡고, 뼈와 살이 부딪히는 재래의 전장에서 '공포'라는 전술의 위력은 더 강력할 수밖에 없지요. 

물론 이 글은 영화감상평일 뿐입니다. 그래서 짐작이고, 상상이죠. 기록도 그리 기대만큼 명확하지 않은 해전에 이순신 장군님의 마음과 의도까지 읽어내는 것은 무리겠지요. 제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순신 장군님이 아닙니다. 그건 불가능하지요. 그저 김한민 감독님의 메시지를 이해해 보려고 애쓸 뿐입니다. 제가 본 것은 이순신 장군님의 해전이 아니라 김한민 감독님의 영화이니까요.

 

6. 영화 '한산'이 내게 준 질문

나의 인생을 걸만한 '거대한 질문'은 무엇일까?
나의 가장 약한 지점은 무엇이며, 나는 그것을 내 전략의 일부로 배치할 수 있는가?
손실을 피할 수 없다면, 어떤 위치에 두어야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을까?

 

제게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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