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과 디씨는 미국의 신화이다.
미국의 영웅관, 미국의 다양성, 미국의 시민권, 미국의 자유와 통제. 미국의 프론티어.
여기에 역사, 과학, 패션, 환상, 자본, 인종 등등의 이야기가 캐릭터와 스토리로 창조되어
미국인의 미국인을 위한 미국인에 의한 에피로 가득하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는 유럽의 신화이다.
그리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도시국가, 로마로 대표되는 유럽의 제국 열강
그들이 흥망성쇠하며 고민했던 제국, 종교, 인종, 관계, 인간, 욕망, 잉여, 도전, 영원
여기에 자연과 삶에 대한 경이와 두려움, 분노와 절망의 이야기가 캐릭터와 스토리로 창조되어
유럽인들의 이야기가 되었고, 이것은 제국의 시대에 따라
성경과 함께, 전세계인의 이야기가 되었다.
당연히, 세계의 주류는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그랬다.
우리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권해진 것은, (무슨 기독교 집안이 아니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집집마다 이윤기 작가님의 책이 한 권씩은 있었다.
학교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독후감으로 써 가면 칭찬 받던 시절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책 좀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한 번 쯤은
당연히 읽어보고, 그 이야기의 어느 에피를 이야기하면 아..저사람 책 좀 읽었구나
그렇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때까지 마블과 디씨는
엉성한 쫄쫄이와 어설픈 액션으로 기껏해야 매니악한 청소년의 취향을 넘어서지 못하는,
잘해봐야 소년 같은 어른들의 아직 버리지 않은 취미 정도로나 취급받으면 다행이던,
특별하거나 특이한 취향으로 여겨지던 세계관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대략 20여년 전부터 바뀐 거 같다.
마블과 디씨의 에피들이 첨단의 영상 기술로 생생한 현실감과 타격감을 얻게 되면서
대중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고, 그 인기 속에 마블과 디씨의 에피들이 품고 있던
현대사회의 인문학적인 고민과 통찰이 공감 받으면서
양적으로, 질적으로 스케일을 어마어마하게 넓혔고 계속 넓히고 있다.
내 생각에 마블과 디씨는 이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넘어선 듯하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담긴 인간과 문명에 대한 고민과 탐구, 통찰과 은유, 토론과 결론
그들은 여전히 유효하며 유익하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며 태어나 관계를 맺고 인정을 받으려다 게으름에 충실한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고
결국은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다른 것은,
현대의 우리는 그들과 너무도 다른 환경, 다른 기술, 다른 과학과 사회와 구조에 살며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근원과 맥락을 따지면 같은 곳에 닿을지 몰라도, 일단 우리들의 눈 앞에 있는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그들은 전혀 고민할 수 없었던을 현대인들은 고민하고 있고,
그들은 전혀 고민할 기회조차 없었던 것을 현대인들은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해
마블과 디씨는 이제 21세기 지구의 신화에 이르고 있는 듯하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다.
인류에게 이러한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는 대부분 '신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마블과 디씨는 21세기의 신화가 아닐까 싶다.
마블과 디씨라는, 이 미국에서 태어난 이야기가 신화가 되면서
미국인들은 지난 300여년간 떨쳐낼 수 없었던,
그렇게 선망하면서도 벗어나려 했던
유럽의 신화 -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블과 디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디즈니 플러스가 런칭을 준비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내게 건네며
교양과 상식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정도는 읽어야지 하셨던 그 애정 어린 조언처럼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교양과 상식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정도는 봐야지 하며
마블과 디씨의 에피 리스트를 문자로 건네 받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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