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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 라이프/주말의 차박영화

조커, 누구냐 넌?

by 최신버전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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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커-누구냐, ?

 

배트맨에게 다가가기에 앞서, 아니 배트맨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은 '조커'이다. 대체 그는 왜 그렇게 배트맨을 괴롭히는가. 그런데 왜 이상하게도 그는, 자신을 배트맨의 절친이라 이야기하는가. 물론 배트맨은 진저리치며 거부하지만, 조커는 그렇지 않다. 정신병원 골방이라도 배트맨과 함께라면 어디든 가겠단다. 이 무슨 야릇한 설정인가. 그러나 배트맨을 향한 조커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인 것은 아니고 그 나름의 내력이 있다. 조커가 만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흉터-입에서 귀로 이어져 그를 조커로 보이게 하는-이야기. 어릴 적 무시무시한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어머니를 잃고 생겼다는 한 쪽 뺨의 상처, 아내에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다는, 그러나 그 모습을 혐오하며 아내가 떠나버린 탓에 더 아프게 남았다는 다른 뺨의 상처 이야기.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공포와 광기가 비롯되는 과정에 대해 사색할 계기를 얻는다.

 

 

E.프롬에 의하면, 실존적 측면에서 볼 때 한 인간의 탄생과 실낙원 사건은 거의 같은 상황이다. 한 인간의 탄생이란 모태로부터 분리되어 모든 것이 비결정적이고 불확실하며 개방적인 상황으로의 추방이다. 여기에 인간의 원초적 소외의식불행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상태를 극복해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 이 목적의 실현에 절대적으로 실패할 때 광기가 생긴다. 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 인간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대답은 여러 가지이다. 이 문제는 동물 숭배에 의해, 인간의 희생 또는 군사적 정복에 의해, 사치에의 탐닉에 의해, 금욕적 단념에 의해, 강제 노동에 의해, 신의 사랑에 의해, 인간의 사랑에 의해 대답될 수 있다."

김용규, <영화관 옆 철학카페>, 이론과실천, 204-206.

 

 

 

조커의 이야기를 대입해 본다. 오우 이런, 꼭 들어 맞는다. 그랬구나. 아팠구나. 그래도 여전히 남는 질문 - 대체 조커는 왜 그렇게 배트맨에 집착하는가. 왜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을 완성하였으며 자신을 불러냈으며 자신과 닮았다 하는가. 닮았다고? 그럼 배트맨도 끌어와 볼까했더니 오우 이런, 배트맨도 꼭 들어 맞는다. 그랬구나. 고담시 재벌기업의 총수이면서도 밤마다 배트맨으로 참 피곤하게 사시는 브루스 웨인이 이 고단한 삶을 택하게 된 데에는 조커만큼이나 아픈 상처들이 있으니 그것은 어릴 적 오래된 우물로의 추락과 부모님의 죽음이다. 두 사건이 다 '박쥐(Bat)'에 대한 자신의 공포와 관련이 있기에 그는 자신을 깊이 자책하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가혹했던 분리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상처를 극복해 낸 방식이다. 브루스 웨인은 자신에게 공포의 화신이었던 대상,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상징하던 대상, '박쥐'를 오히려 자신과 동일시하며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브루스 웨인이 마트에서 참 좋아할 사자맨이나 매일 아침 우유에 밥말아 먹는 호랑이맨이 아니라 배트맨을 선택한 이유이다.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킨 공포의 상징을 자신과 동일시한 배트맨. 조커가 자신에게 공포와 고통인 흉터를 가리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상징으로 삼은 이유도 그와 같다. 그리고 둘 다 세상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분리되는 지독한 고통 안에서 세상의 공평함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 대체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 것일까?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여기다. 그들이 동일한 패턴의 '고통과 극복의 시간'을 가졌으되 삶의 지향이 달라지게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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