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꾼 우시지마를 정독하다. 그 처참하고 참혹한 밑바닥의 밑바닥의 밑바닥 이야기. 놀라운 것은 이유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도록 그들의 삶이 파탄하는 이유, 마지막 피 한방울, 마지막 체액 한 방울까지 그들이 자신의 삶을 착취당하는 이유.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게도 '외로움'이었다.
열흘에 걸쳐 40내 내외의 사람들을 만나다. 다양한 자리에서 다양하게 살고 있는 그들의 인생 이야기. 놀라웠던 것은 그 안락하고 평범한 삶 속에서도 그들은 다시 외로워 한다는 것이었다. 대개 남편과 아내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겨워 했고, 지루해 했으며, 아이는 예쁘지만 어렸고, 즐겁지만 쾌락을 주지는 못했다.
외로움이 격해질 때면 그들은 그들 곁에 무언가 있어 주기를 바랬고 곧 구매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런 것이 따분한 사람은 직접 사람을 샀다. 무언가가 그들을 찾아와 그들 곁에 머물며 어떤 필요를 채워 준다는 것이 그들의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상품은 곧 효용을 잃고, 외로움은 다시 고였다. 상품은 근원적으로 계속 팔려야 했으므로, 애초에 상품은 그들 곁에 내내 머물지 않게 설계되었다. 그러니까 상품은 그들을 따르는 듯이 보였으나 결코 그들을 따르지 않았다. 상품은 다만 돈을 따를 뿐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그 구멍이 메워 지지 않는 이유였다.
사람들 안에 구멍이 있었다. 메워지지 않는 구멍. 어떤 이는 크고 어떤 이는 작았다. 분명한 것은 모두에게 구멍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구멍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그 구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 구멍을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뒤를 따르고 구멍을 돌보지 못한 이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 구멍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어하는 이들도 결국 그 구멍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잃었다.
블랙홀은 손바닥보다도 작을 수 있으며 그 크기에 관계 없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미 알고 있는 이들도 그 구멍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구멍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는 시도나 구멍을 완전히 메워 버리려는 시도는 모두 위험했다. 그런 시도가 반복될수록 그들은 더 강력하게 빨려들어갔다. 폭력, 범죄, 도박, 마약, 술, 섹스. 다시 또 다시 반복되는 그 모든 종류의 중독. 현상은 달라도 원인은 하나였다. 그것은 외로움, 외로움 이었다.
외로움이라는 그 검은 구멍에 빨려 들어간 이는 어느 순간 검고 광대한 우주에 뱉어졌다. 그들은 발 하나 디딜 곳 없이 홀로 떠다니는 극한의 무중력을 경험했다. 그 광대한 검은 망막함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구멍을, 외로움을, 그 광대한 망막함을 인정하고 때로 그 공포를 각오할 수 있다는 것이어야 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다시 아이가 되었다. 어른의 몸으로 아이의 삶을 사는 것은 위험했다.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장난감으로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결국 그의 모든 것을 팔아치우게 했다. 아이는 자신의 무엇이 팔려나가는지 모른다. 그것이 그를 파멸시킨다. 때로 어떤 어른은 그 광대한 망막함까지도 받아 들였다. 그리고 무중력의 자유를 누렸다. 사람들은 그들을 성인이라 불렀다.
어쩌면 이 빌어먹을 외로움이 사피엔스 종을 지구 최강의 종으로 만든 근원일지 모른다.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생존자이며 가장 비열한 번식자이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목적은 쾌락으로 수행된다. 뜨겁고 황홀한 이 쾌락은 마치 폭발과도 같다. 이 폭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외로움'이 아닐까. 수백만년의 유전자가 썩어 고인 이 검고 걸죽한 것. 그것이 인간의 몸에 고이다, 어느 순간 밝은 빛으로 폭발한다. 그것이 더 검고 더 걸죽할수록 그 빛은 더 밝고 찬란하다. 쾌락, 그 이전의 외로움이 인간을 생존과 번식으로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닐까.
생존과 번식이라는 조향시스템과 쾌락과 외로움이라는 내연시스템의 조화는 30대에 이르러 최고의 효율을 발휘한다. 이 조화가 위험해 지는 것은 인간의 40대. 사회에서 마련한 생존과 번식의 시스템에 안착했음에도 외로움이라는 연료는 계속 주입되고, 쾌락이라는 폭발을 멈추고 싶어하지 않는다.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의 마지막 장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던 것은 그가 세계 최고의 오페라 가수여서도, 갑상선암으로 목소리를 잃었다가 수술 후 다시 재기해서도, 그가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슬프도록 아름다워서도 아니었다. 내 심장이 순간 쿵, 내려 앉은 장면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객석과 연주석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가 알아본 장면. 조명이 객석에 앉아 그의 노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 장면. 그는 외로웠으나, 결국 외롭지 않음을 알게된 장면이었다.
이 가공할 외로움. 이 외로움을 돌보는 법.
40대 이후의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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